바스크 프라이드, 로스 레오네스 (rewrite)
- Football
- 2022. 4. 6.
흔히들 축구팬들에게 명문팀에 대한 논란과 함께 어느팀이 더욱 전통과 합당한 격식을 가지고 있는 팀이냐의 논쟁이 많이 일곤 한다. 모든 팀들이 그에 따른 거대하고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스페인에 살아 숨쉬는 명문팀을 고르기는 어찌보면 굉장히 쉬울수 있다. 현재도 꾸준하게 정상의 자리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양강이 그들이다.
그러나 바스크인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상당히 기분 나쁜 표현이다. 스페인에 살아 숨쉬는 정상의 클럽은 자신들이라고 굳게 믿는 남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바스크 팬들은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고는 했다.
빌바오 팬 : 너희들의 클럽 모토는 솔직히 우리것 아니야?
바르셀로나 팬 : 그러면 지금 너희들 모토는 우리것으로 하면 되겠네?
빌바오 팬 : 너희들 우리에게 몇대 몇으로 졌었지?
서로의 이 투닥거림에 대해 감이 잘 안오겠지만 빌바오는 아직도 스페인의 유수한 역사와 트로피, 전력을 자랑하는 팀들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팀이자 스페인 축구의 산 증인이다. 그들이 이룩하고 그들이 해냈던 여러가지 재미있는 기록들을 간추려보자.
프리메라리가 최초로 무패우승을 일궈낸 팀 (1929-1930시즌)
최초의 프리메라리가 트로피를 영구보존하고 있는 팀
바르셀로나,레알마드리드와 함께 단 한번도 세군다리가 (2부리그)로 강등당하지 않은 팀
스페인 역사상 5번의 더블(리그,컵대회 동시우승)을 기록한팀
시즌 홈경기 평균득점 최고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팀 (경기당 5.44골)
시즌 어웨이경기 평균득점 최고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팀 (경기당 3.11골)
바르셀로나,레알마드리드,에스파뇰,오사수나에게 홈경기 최다 스코어 패배기록을 안겨준팀(레알마드리드 0-6패배, 바르셀로나 0-6패배 포함)
시즌 최대 홈승률과 어웨이승률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팀 (89퍼센트 동일)
리가 한경기 최다 골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팀 (바르셀로나 상대 한경기 7골, 12-1로 빌바오의 승리)
내전 기간중 가장 많은 코파델레이와 리그 타이틀을 빼앗은 팀
그들은 최다 득점 수상자와 코파델레이 최다 경기출장 기록선수를 보유한 팀 (가인사,99경기) 이기도 하며 프리메라리가 최다 출장자와 가장 많은 코파델레이 우승선수 보유팀이기도 하다.
대부분 감독들이 빌바오 클럽의 감독제의를 거절할수 없다고들 한다. 합당한 격식을 갖춘 여러가지 전통을 보유한 클럽중 그들은 가장 강한 팀이었고 가장 상대를 압도하는 팀이었으니깐. 거기다 그들은 그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이고 어떨때는 유연하기도 하며 팬들은 충성적이고 열정적으로 그에 따른 환호를 해주니깐.
자 간략한 소개를 해봤는데 어떤가.이제 그들의 클럽 모토를 공개해 보겠다.
Zu Zara Nagusia (너희들은 최고다)
90년대 빌바오의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스페인 정론지 엘문도에서 바스크인들을 상대로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했었다.
- 빌바오의 순혈정책,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
흥행을 끌어내기 위하여 빌바오팬들을 자극시키는 답문을 게재했고 빌바오팬들은 80퍼센트 가량 이 답문에 망설이지 않고 체크했다.
"우리의 정책을 포기하느니 팀이 강등당하는것이 낫다"
클럽 아슬레틱 빌바오는 바스크인들의 자존심이다. 그들은 까탈루냐와 까스띠야 출신들보다 더욱더 투쟁적이고 지독한 구성원으로 소문난 클럽이며 프랑코의 저항에 가장 강력히 대항한 구성원들이 끈질기게 지켜낸 클럽이기도 하다. 이에 따른 증명으로 유명 저널리스트 필볼씨는 이렇게 표현한다.
"마치 산마메스 (빌바오 홈구장 )에서의 그들의 응원은 한판의 투우 경기를 보는것 같다"
흔히들 빌바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 순혈정책일 것이다. 그들의 자존심과 함께 타팬들이 바라보기에 멋지고 웅장하기도 한,바스크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는 그들이야말로 클럽 이상의 클럽의 호칭이 어울려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탄생한 배경을 보면 그들의 이 클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존재는 의외라고 볼수 있다.
19세기,스페인은 이념대립이 서서히 심화되고 있을 당시였지만 그들의 의견차이에 대한 중대한 이유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넘어온 물질적인 대립에 가까웠다. 당시 매우 후진적인 모습을 보이던 스페인의 구조상 영국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스페인인들이 가장 경멸에 가깝게 멸시하던 부류는 사실 영국의 귀족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자신들의 투쟁심을 찾기 위해 제조업자들과 노동자의 대부분이 까탈루냐와 바스크에 자리잡고 제조업과 조선업이 자연스럽게 번창했는데 이런 가운데 귀족들을 같이 혐오하고 있던 영국의 노동자들과 스페인 노동자들의 교류는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영국 노동자들은 스페인에 넘어와 자신들의 유행종목인 컬링, 테니스등을 유행시키기 시작했지만 뭐니해도 빌바오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많던 종목은 축구였다. 각종 축구경기가 일상화 될때쯤 영국의 교류로 인해 넘어간 바스크 기업가들의 아들들 (유학생) 은 축구에 대한 매력을 영국 현지에서 흠뻑 빠지게 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두 팀이 공을 끝까지 쫓아가는 남자들의 운동이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는가"
철강의 부르주아들중 하나였던 후아니토 아스토르쿠이아(Juanito Astorquia)를 필두로 33명의 스포츠 광들은 팀원을 구성하고 그들은 가르시아 카페에 모여 바스크의 위대한 팀을 건설하기로 맹세한다. 마치 이 만화같은 모임에서 그들의 팀 명칭은 아슬레틱 클럽(Athletic Club)으로 정해졌으며 그 이후 포츠머스와 사우스햄튼의 노동자들과 교류하며 축구에 대한 견문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영국의 영향을 깊게 받으며 창단된 부르주아들의 클럽,시민들이 유행에 젊은 유학생들의 호감이 만들어낸 클럽,이것이 바스크인들이 현재 두루 사랑하는 아슬레틱 빌바오의 시작점이었다.
"위대한 팀 로스 레오네스(Los Leones)"
빌바오의 클럽 상징은 로스 레오네스, 사자이다. 어쩌면 그들의 격렬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심볼이라고도 할수 있는데 이 로스 레오네스가 축구 역사상 팬들의 뇌리에 박히게 된것은 바로 30년대 초부터이다. 30년대라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가 창립된 28년 이후 얼마되지 않은 대회 초창기라고 할수 있고 리가 강팀의 주인공은 레알마드리드도, 바르셀로나도 아닌 이 빌바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첫 문단에 빌바오가 이뤄낸 위대한 기록들을 간추려 봤지만 저 위대한 기록들의 대부분은 30년대 빌바오 전성시대에 쏠려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레알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5연패시절은 지금까지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지만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스페인 클럽으로 황금의 레오네스 세대를 꼽는 전문가들도 많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세대는 단순히 사자팀의 전성시대가 아닌 펜틀렌드의 라이언(Pentland's Lions)으로 더 많이 불리우곤 한다.
보울러 햇(Bowler Hat-신사들이 쓰는 모자로 우리에게 알려진)은 영국 상류층의 상징적인 아이템이었다. 영국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차별성을 위해 사용한 이 보울러햇은 산업혁명에 이은 대량 생산으로 인해 노동자와 중산층들에게도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1920년대 당시 유럽에 상당한 유행을 몰고 왔기도 했다. 채플린 모자라는 명칭으로 아시아에도 유명해진 이 보울러 햇이 가장 잘 어울려서 애칭으로 굳어진 빌바오의 레전드가 있다.
바스크의 위대한 클럽이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필자가 단정하는 것은 사실 그들의 축구가 영국에서 넘어왔다는 것보다 보울러 햇 신사(bowler-hatted), 프레드 펜틀렌드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울버햄튼에서 태어난 펜틀랜드는 스몰히스의 유스팀에서 촉망받는 포워드로 많은 팀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를 눈여겨 봐온 블랙풀과 사인하게 된다. 그는 당시 외소한 체격과 함께 많은 출장을 하지 못했다. 블랙풀에서는 단 한시즌만에 그를 블랙번과의 거래에 허락하는데 이건 그의 축구인생에서 자그마한 시련에 불과했다. 런던 서부지역 팀들을 전전한 그는 미들스브로에 도착해 양쪽 윙어로 보직을 바꾸며 특유의 스피드로 대표팀에도 선택되며 어느정도 축구에 눈을 뜨게 되지만 무릎의 고질적인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하고 만다. 펜틀렌드는 특히 전술적인 소양이 상당히 밝아서 코칭에 대한 흥미에 빠지게 되지만 자신의 가진 철학을 자국의 유행에 맞추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회상한다. (그의 생질 콜린 펜틀렌드의 증언 中)
당시 모든 축구의 시스템이 잉글랜드에서 시작되고 보급되면서 감독으로서의 전술적인 지식이나 보급은 거의 영국인들의 몫이었다. 그런 면에서 펜틀랜드 또한 1914년 독일의 올림픽 대표로 감독 커리어의 처음을 찍게 되지만 원 목적은 독일의 장교들에게 잉글랜드 축구를 강의하기 위함이 컷다. 그러나 그는 카이저의 동원령이 떨어진 이후 울버린의 포로수용소에 감금 당하게 되고 그동안 그의 몸은 심히 쇠약해진다. 당시 그를 치료하던 간호사는 그를 극진히 간호하게 되고 스페인 국적의 간호사와 로맨틱한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런 그의 일화는 스페인을 자신의 축구철학 전파의 본부로 결정한 결정적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가 독일과 반대의 이념과 충돌로 고생하는 스페인의 시민들에 더 애착을 가진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런지.
라싱에서 출발한 그의 스페인리그 감독 인생중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패싱축구였다.당시 패스에 대한 관념보다 슈팅과 크로스를 중심으로 한 변형전술들이 판을 치고 있던 축구계에서 그의 이런 철학은 1년뒤 빌바오에 정착하며 더욱 확고해졌고 빌바오는 23년 코파델레이 우승을 차지하며 저력을 발휘한다. 이런 그의 철학은 빌바오를 맡으며 그가 추구한 형상에 의해 더욱 명확해진다.
"축구에서 중요한 두가지 : 빌드업과 숏패싱"
W-M포메이션의 전국적 유행과 마자르가 탄생하기 직전 그는 볼의 처리보다 운반과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밝혀낸 일종의 로맨티스트와 다름없었으며 이런 조직적 움직임이 빠르고 강력한 공격력의 형상이 됨을 팬들과 선수들에게 이해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부임했지만 곧 승리를 원하는 빌바오와 재결합해 자신의 모든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빌바오의 전성시대 보울러 햇의 위대한 라이온의 출발이었다.그의 철학의 고집은 감독생활 출발선부터 특이했으며 그가 그의 선수들에게 한 명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너희들이 할일은 간단해. 그저 따라오면 돼"
이 황금세대는 강력한 조직과 공격력을 보여주며 펜틀렌드의 놀라운 출발을 무패우승으로서 증명했다. 그는 더블 스트라이커의 유기적 조합 역시 서로의 패싱관념에서 출발됨을 주장하였고 그의 30년대 고로스티자,우나무로 등의 뛰어난 바스크 투톱을 형성하며 35점의 놀라운 골득실을 기록하며 (당시 한시즌은 9개팀 18경기로 결판이 났다) 공격축구의 전성시대를 열어갔다. 무패 우승에 이은 연속 우승, 최다 득점과 최다 스코어 기록은 빌바오의 베스트 일레븐의 무서운 공격축구에 의해 존재하였으며 후진적인 당시 축구 시스템 속에서 다시 나오기 힘들 놀라운 기록이기도 하다. 펜틀랜드는 자신의 축구에 대한 비법을 "선수가 피트 안에 공을 두는 방식"으로 표현하였고 이것은 현재 퍼스트터치, 키핑이라고 불리는 선수들의 기본 소양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공을 보내고 골에 박는것을 축구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그곳에 모든 것을 투영했던 당시의 감독들과 그가 차별된 공간에 있던 이유이며 그의 또다른 별칭인 트레이닝의 "masseur(안마사)"에 잘 어울리는 방향이기도 했다.
그는 시가를 입에 물고 선수들을 독려하며 카리스마와 동기부여로 팀을 휘어잡는 감독이기도 했다.그가 레츠코트(바르셀로나 깜누 전신) 피치에서 선수들에게 "우리에게는 고작 3분밖에 없다"라고 소리쳐 선수들의 의욕을 끌어올린 이야기는 스페인 축구사에서 아직도 전설적인 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펜틀랜드는 5개의 리그와 코파델레이 트로피를 30년대 들어올리며 승승장구 했으나 이후 프랑코의 정책에 따라 아슬레틱의 개명(아슬레티코 빌바오),그에 이은 철저한 언어 통제와 팀 제어속에 힘을 잃어가고 그의 성격상 이런 환경에서 자신의 뜻을 피지 못할것으로 생각,다시 제2의 친정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지만(까스띠야 정부의 압력이라는 설이 있다),1년만에 스페인내 은퇴선언을 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빌바오에 대한 조언과 유소년 육성에 힘쓴다.1959년 빌바오와 첼시의 홈경기, 산마메스에 초청받은 그는 빌바오팀 공식 메달을 수여받음으로서 민족의 자존심에 들끓던 바스크인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정받은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1962년,위대한 보울러 햇이 세상을 떠난날. 산마메스의 모든 팬들은 시적인 피켓을 수놓으며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짧은 행사를 이렇게 위로했다.
"당신을 떠나보낼 시간이 너무 부족하구려"
숏패싱, 빌드업. 최근 화려한 패싱축구로 유로와 월드컵을 제패한 스페인 축구, 라리가의 영원한 상징, 공격축구의 재창조된 아이디어, 아름다운 축구. 스페인 축구에 건너온 영국인을 적절하게 조명한 한 저자의 문구를 인용해본다.
필볼(축구 저널리스트) 曰
"프레디를 단순한 레전드라 부르기는 무리가 있다.그는 숏패스 게임의 위대한 창조자였으며 당시 고정화된 축구의 반역자와도 같았다. 영국인인 그는 현재의 스페인 축구의 영광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구겐하임을 필두로 스페인에서 유난히 박물관이 가장 많은 지역은 빌바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바스크인들의 유난한 민족의식과 맞물려 이루어진 현상이기도 한데 최근 세대의 역사의식이 세계화되면서 그들 또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마련, 소멸되어가고 있는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에 노력하고 있다. 빌바오 전용 마케팅화를 필두로 메트로폴리스 건축에 의한 문화도시화 (스페인내 조선과 철강등 전통산업이 쇠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는 재정과 정신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위한 그들의 최근 프로젝트이다. 현재는 많이 유연해졌지만 그들은 한때 바스크인이 아닌 스페인 시민들조차 외국인으로 규정하고 간주하기도 하였다. 이런 세계화와 마케팅,독립적 욕구에 의해 최근 더욱 영향이 투영되는 곳은 그들의 축구팀 아슬레틱 빌바오가 될수밖에 없다.
빌바오 축구팀은 바스크 선수들의 공간이니만큼 그들이 가장 신경써야 되는 부분은 어디에 있었을까? 당연한 과정이지만 그들의 칸테라 (유스시스템) 는 그들 축구팀의 핵심이 되었을수밖에 없다. 그들의 칸테라는 크루이프가 창조해내고 성공적인 행보를 자리하는 바르셀로나나 스페인내 최고 투자로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있는 마드리드 지역보다 훨씬 전통적이고 체계적이기로도 유명하다. 물론 최근 파이가 거대해진 양강 클럽에 비해서 많이 뒤쳐진 수준이지만 적어도 스페인내에서 그들이 상대적으로 확실한 재정상태를 유지하는 기본바탕에는 이 칸테라의 투자가 뒷받침 된다. 리가 최연소 골 기록을 가진 무니아인이나 보르하, 에체베리아 토케로 요렌테등도 당연히 1930년대부터 재빨리 정착되어 최초로 시스템을 구축해낸 자존심 높은 칸테라의 철저한 교육속에 자라왔다.
정확히 그들이 칸테라 정책을 편 것은 1912년 부터이다. 그들의 유스 시스템을 놀라워서 여태까지 국가 대표팀 배출 선수 숫자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에게 브라질의 슈퍼스타와 계약하면 안된다는 서면 규칙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태까지도 이런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순혈 주의만 놓고 보면 외국인 혐오라는 비판이 따라왔고, 수년에 거쳐서 약간의 수정이 있었다. 빌바오에서 골을 넣은 최초의 흑인 선수인 이나키 윌리엄스(Inaki Williams)는 아버지가 라이베리안이고 빌바오의 혈통과는 아예 상관이 없는 선수이다. 그러나 그는 빌바오에서 태어나 자라났고 바스크를 사랑하며, 바스크의 정신을 외친 비혈통이기 때문에 팬들의 환호를 받고 레제마에서 성장할수 있었다.
비슷한 정책을 썻던 바스크 지역의 레알 소시에다드의 경우 '경쟁력이 없다' 라는 이유로 리버풀의 존 알드리지와 계약하여 순혈 정책과 유소년 수급을 포기 선언했다. 빌바오 역시 세계화에 맞추어 혈통 주의의 기준이 낮아졌지만,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빌바오의 힘은 어떻게 되든 칸테라가 그 중심이 될수 밖에 없다.
케파가 8800만 달러에 첼시에 이적하는 것을 포함하여, 이적을 통해 얻은 대부분의 돈은 바스크의 유스 아카데미에 투자된다. 물론 그들도 이적료를 들여 유리 베르지체 같은 선수를 영입하는데 큰 돈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비율로만 보면 생각보다 더 미비하다. 전 회장 조수 우루티아(Josu Urrutia)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정말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유스 아카데미는 5개의 천연 잔디로 이루어진 피치와 1개인 인조잔디 구장, 최신식의 메디컬 센터와 체육관 시설 미니 라자마스(mini Lezamas)로 불리는 빌바오 지역 최고의 교육기관등으로 선수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그들의 칸테라에는 타팀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모토를 내걸고 있기도 하다
"Con cantera y afición, no hace falta importación(고향의 팀과 팬이 함께 한다면 외국인은 불필요하다)" - 종종 이 피켓은 "The barque country does not walk alone"과 반대편에 같이 걸리기도 하지만 -
물론 그들이 80년대 이후 우승권에서 멀어지자 상당히 논란이 되었던 정책상 찬반양론이 재개되기도 하였다. 맨체스터에 입단하기전 포를란 또한 그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선수였는데 그는 조부모가 모두 바스크인이며 그에 따른 입단을 추진했으나 역시 불발되어 맨체스터로 선회한 경력이 있다. (남미출신들은 바스크인들이 조부인 경우가 아직도 많다고 한다). 그들은 이후로도 순수혈통 정책을 고집스럽게 지켜가면서 리그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거두어냈다. 그들의 이런 힘은 그들이 축구를 잘하는 혈통이라 가능한 일일까?
90년대 오랫동안 바스크 칸테라를 집중적으로 관리해온 만디리바는 바스크의 보수정책을 강력히 지지하는 관계자중 하나이다. 그는 바스크의 이런 성공적인 정책에 대한 근거로 3가지 이유를 내세운다.
1.Ethnically(민족적) - 바스크인들은 역사와 전통을 축구에 투영시키기 알맞은 환경에 있으며 다른 클럽팀과는 달리 민족의식을 끌어내기 용이하다. 그들은 스페인 내의 또다른 대표팀과 마찬가지이며 어린 선수들부터 이런 관념으로서 대표자의 기분으로 필드에 드러선다.
2.linguistically(언어적) - 철저한 혈통주의로 인하여 그들은 서로에 대하여 적응기간이 없다시피 하다. 대부분 친숙한 느낌을 쉽게 가지게 되며 조직력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시킬수 있는 바탕이 스스로 마련되며 언어에 민감한 포지션들의 수급걱정이 줄어든다.
3.Culturally(문화적) - 고유한 문화를 통해 선수들의 이질감이 없다. 이것은 유스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가장 큰 기초가 되며 교육을 통한 선수들의 최대능력을 이끌어내는 가장 큰 원인이 될수 있다.
* 아슬레틱 클럽은 팬들의 보호 욕망에 의한 특징이 담겨있으며 점점 희귀해져가는 21세기 축구 정신에 어울린다
- 빌바오가 오피셜 페이지에서 밝힌 클럽의 철학 中 -
그들의 칸테라는 철저한 기준으로 자리잡은 그들의 철학을 지탱하는 표시이며 어릴때부터 정신력으로 무장된 그들의 선수들에 의해 자리잡고 의지되어 왔다. 적절한 투자와 더불어 훌륭한 교육기관에서 어릴때부터 팀에 대한 애정과 충성을 배워나가는 어린 소년들 중에 사실 성공하는 선수가 안나오는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21세기는 축구계 역시 확실히 세계화로 인한 만국의 교류로 변화되었다. 연고 의식에 대한 개념이 좋은 선수의 수급에 의한 승부와 트로피에 집착하고 있는 이 현실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모범적인 시스템을 유일하게 보여주는 한팀이 바로 스페인 축구역사에 고개를 아직도 떳떳히 든채 자리잡고 있다.
지리적 이점으로 선진 문물을 재빠르게 받아들이고 재정적인 넉넉함을 유지한 까탈루냐의 역사와는 달리 바스크는 항상 자급자족의 정신, 주 내에서의 상업적 교류를 중시했던 지역이다. 그런 그들의 철학이 바로 축구에도 투영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들에게는 빌바오 팀이 마치 생명과도 같다.
바스크 인들은 특유의 민족성이 경기장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초창기 대부분 영국 감독들에 의한 영향으로 때로는 힘있고 빠른 축구를 하기도 하며 자신들이 건설한 스페인 특유의 짧고 유연한 축구를 해내기도 하는 끈끈한 팀으로 자리잡았다. 홈에서만큼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역시 녹록치 않은 상대가 이 바스크 클럽이다. 그들은 영원히 자신들의 철학을 유지한채 자신들의 축구를 우직하게 팬들에게 약속대로 보여줄 것이다.
빌바오 팬들이 뽑은 올타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호세바 에체베리아가 유스 선수들의 성장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한 답변을 끝으로 글을 마쳐본다.
"축구는 오직 하나의 언어다"
● 그들은 안정적인 정책으로 인해 2013년 San Mamés Barria(뉴 산마메스)를 160M유로를 투자해 건설하였다. 좌석은 5만 5천에 육박하며 유에파 5성 경기장 기준이다. 리모델링으로 좌석 수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 중이고, 그에 따른 찬반 여론이 있다.
● 기존의 산마메스 역시 스페인 내에서 가장 오래된 스타디움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장이다. 앞으로 박물관과 빌바오 지역의 문화 발전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경기장 산마메스의 이름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 던져진 기독교도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상당히 종교적인 색깔을 지닌것이 특징이다.
● 현재 피치치라고 불리는 스페인의 득점왕에게 건네지는 수상명도 빌바오 출신의 전설적인 골잡이 라파엘 모레노 아란자디(Rafael Moreno Aranzadi)의 팬들의 애칭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평균 0.9골에 육박하는 골기록을 리가에 남긴 특급 골잡이이다.
● 빌바오와 바르셀로나 팬들은 최근 많이 희석되었지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바르셀로나는 역사상 최다득점 패배를 당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최근으로 넘어가면 마라도나의 패싸움이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아직도 빌바오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선수 설문에 항상 수위를 나타내는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 빌바오 팬들은 ath, atb, the club vizcaya, the atletico bilbao, the athletic club 이라고 써도 자신의 팀인줄 알아듣지만 올드팬들은 아틀레티코 빌바오라는 호칭을 좋아하지 않는다.
● 그들의 또다른 자랑은 그들이 동시에 운영하는 여성 축구 클럽팀이다. 당연히 바스크인들로 운영되고 있으며 남자팀과 같이 강팀으로서의 전통을 자랑한다.
● 아슬레틱 빌바오와 관련된 웹사이트들
http://www.xtratime.org/forum/forumdisplay.php?f=106
http://www.aupaathletic.com
http://canales.elcorreodigital.com/especiales/eleccionesathletic/noticias/not270501a.html
http://www.athletic-club.net
'Footbal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최고 선수들의 여름 이적 확률은? (2) | 2022.05.11 |
---|---|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최고의 FA 선수들 45명 (0) | 2022.05.06 |
주말엔 FM(풋볼매니저) 전술을 만들어보자 (5) | 2022.04.10 |
페이쉬(Peixe)의 인기 소년, 카이키 페르난데스 (4) | 2022.03.30 |